지난 12일 경상북도 이차전지.철강 기업 간담회에 참석한 이철우 경북지사(왼쪽)와 이강덕 포항시장. /사진=포항시
경북팩트뉴스 조현묵 기자 |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중심지인 포항이 거대한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한때 국가 경제를 견인했던 철강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구조적인 변화에 직면했고, 포항 역시 그 영향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글로벌 보호무역 강화, 친환경 산업 전환, 수요 감소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철강산업을 압박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지역 경제의 위기도 현실화하고 있다.
최근 미국 트럼프 정부 2기의 보호무역 정책이 다시금 강화되면서, 국내 철강산업은 또 한 번 위기에 처했다. 한국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25% 관세 부과 조치는 철강 수출 의존도가 높은 포항의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특히 미국 시장은 한국 철강업체들에 중요한 수출 대상국이었지만, 보호무역 장벽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은 수출 감소와 가격 경쟁력 저하를 겪고 있다.
문제는 이번 위기가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8년 전 트럼프 대통령이 1기 집권 당시에도 비슷한 보호무역 조치가 시행되었고, 당시 한국 정부와 철강업계는 한미 FTA 재협상을 통해 수출 쿼터제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임시방편적인 해결책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결국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지난 8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철강산업의 위기를 예측하고 대비할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정부와 기업들은 뚜렷한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또다시 중앙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이제는 더욱 실질적인 변화와 대응이 필요하다.
해외 철강 도시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포항이 배워야 할 점
세계적으로 철강산업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 모델을 구축한 도시들이 있다. 반면, 과거의 산업 구조를 유지하려다가 쇠퇴한 도시들도 존재한다. 포항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해외 사례를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 피츠버그는 한때 ‘철강의 도시’로 불리며 세계 철강산업을 주도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철강산업이 쇠퇴하면서 도시 경제도 붕괴 위기에 처했다. 이에 피츠버그는 철강산업 의존도를 줄이고, 바이오테크, 인공지능(AI), 로봇공학 등 첨단기술 산업으로 전환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카네기멜런대학교와 피츠버그대학을 중심으로 연구개발(R&D) 허브를 구축했고, 이를 기반으로 글로벌 기술 기업들을 유치하면서 경제 재도약에 성공했다.
영국 셰필드는 철강산업이 쇠퇴한 후 심각한 경제 침체를 겪었지만, ‘스포츠 도시’로 변신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1991년 세계학생경기대회를 유치하며 도시 기반 시설을 현대화했고, 이후 지속적인 스포츠 이벤트 개최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했다. 또한 폐쇄된 공장을 창업 공간과 문화 시설로 재활용하여 도시재생에도 성공했다.
미국 디트로이트는 자동차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다가 산업 쇠퇴와 함께 경제가 붕괴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자동차 제조업의 자동화와 해외 생산 이전이 진행되면서 일자리가 급감했고, 결국 도시의 인구 감소와 빈곤율 증가로 이어졌다. 디트로이트의 사례는 특정 산업에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준다.
지난 12일 포항 체인지업그라운드에서 개최된 철강금속 디지털 대전환 선포식. /사진=포항시
포항이 나아가야 할 길 …철강을 넘어 새로운 산업 중심지로
포항이 철강산업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존의 산업 구조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해야 한다.
포항은 철강산업의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야 한다. AI, 빅데이터, 자동화를 활용하여 철강 생산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고부가가치 철강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포스코 등 주요 기업들과 협력하여 스마트 공장 구축과 친환경 철강 생산 기술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포항은 배터리와 수소 경제 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미 에코프로 등 주요 배터리 기업들이 포항에 투자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관련 산업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또한, 포스텍을 중심으로 바이오테크와 신약 개발 산업을 육성하여 포항을 첨단기술 허브로 발전시킬 수 있다.
포항은 대한민국 최대 전력 생산 배후를 가진 도시 중 하나다. 최근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시행됨에 따라 포항이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생산·소비하는 ‘에너지 자립 도시’로 전환할 수 있다. 지역별 전기요금제를 도입하여 기업 유치를 활성화하고, 소형모듈원전(SMR)과 재생에너지를 결합한 새로운 에너지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는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포항은 더 이상 ‘철강의 도시’라는 과거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지금이야말로 철강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고, 신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며,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을 구축해야 하는 시점이다.
과거를 답습하며 ‘정부가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만으로는 포항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이제는 지역 사회와 기업,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나서서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야 한다. 포항이 다시 한번 대한민국 경제를 선도하는 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할 때다.